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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악

강원농악은 악기편성이나 음악, 판굿의 구성 등으로 보아 원주, 횡성, 춘천 등지의 영서농악과 강릉, 삼척, 평창 등지의 영동농악으로 나눌 수 있다. 영서농악은 경기농악과 같고, 영동농악은 경기농악과 다른 영동 특유의 향토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영동농악이 이렇게 개성을 간직하게 된 까닭은 거대한 태백산맥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동농악은 비단 강원도뿐만 아니라 동해안쪽에 임한 영남농악과 멀리 함경도 지방의 농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영동농악은 강릉, 평창, 삼척, 고성, 양양 등 강릉문화권에 속한 지방에서 그 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영동농악은 마을굿으로 당굿은 별로 하지 않으며 지신밟기가 성행된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는 볼 수 없는 달맞이굿을 비롯하여 횃불놀이(다리밟기)가 있으며, 이 밖에 두레 농악이라 할 수있는 김매기 농악과 질먹기가 있고 단오날 대관령 성황제의 길놀이 농악이 있다. 또한 배굿으로 풍어제과 관계되는 진대백이굿이 있는 것이 특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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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의 강릉농악

강릉의 단오절 행사는 역사가 깊고 이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농악 역시 단오절 기간에 많은 연주가 행해진 것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농악이 축제의 흥을 돋우고 어울려 노는 역할 뿐만이 아니라 농악대들 간에 연주 기량을 겨루는 대회로 자리를 잡은 것이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다. 농악대의 수가 많으면 경연형식의 대회도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있다.

해방전 강릉농악 사진
해방 후의 강릉농악

일제강점기 때 전통문화의 말살정책으로 신음하였던 것이 우리의‘대동민속놀이’였으며,‘농악가락’이었다. 일제는 전쟁물자 부족으로 놋쇠로 만든‘꽹과리, 징’을 공출한 까닭에 농악대의 구성조차 어려웠다. 1948년 상쇠 박기하는 왕산농악대를 이끌고 이승만 박사 대통령 취임식 때 이화장에서 축하공연을 하였다. 공연 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꽹과리를 선물받고 농악에 힘써달라는 격려도 받았다. 그 해 1948년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광복경축 행사에‘강릉유천농악대’가 강원도 대표로 참가한 것이‘강릉농악의 부활’을 위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50년 6·25 동란으로 인하여 농악대는 그 원래의 모습은 갖추기 어려웠으나 1958년 제1회 전국민속경연대회 권태경 상쇠가 월호평농악대를 이끌고 경연대회에 참석하였다. 이로써 강릉 농악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1960년대에는 우리 농악의 새로운 전환의 시대였다. 강릉농악은 1961년 서울에서 시행된 제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국가적인 공식 행사에서의 수상은 강릉농악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1962년 제3회, 1963년 제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강릉단오제에‘옥계, 남양리, 월호평동, 사천면, 왕산면, 장현동, 경포’지역의 농악대가 참여하여 농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열의로 1969년 대구에서 시행한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강릉농악’이 장려상을 받았다.

1970년대 들어오면서 새마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또 미신타파라는 명목하에 민속고유에 신앙은 물론이고 전통 민속악까지도 움츠려졌다. 1977년, 수원에서 개최된 제18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대회에 강릉농악의 상쇠인 박기하씨가 평창백옥포 농악대를 이끌고 참가하여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고 1978년 춘천에서 개최되었을 때에는 평창농악을 이끌고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다. 이를 계기로 박기하씨를 주목하였고 강릉농악의 특이한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81년에는 강릉의 [대보름 농악]이 새로 발굴된다. 강릉의 [대보름 농악]은 그 해 인천에서 거행된 제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1985년, 12월 1일 강릉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라호]로 지정되었고 박기하는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86년에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농악의 효과적인 보존·전승을 위한 [강릉농악보존회]가 구성되었다.

1990년대 [강릉농악]은 전승 체계를 확립하면서 대외적으로는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는 시기였다. 게다가 국제적인 교류까지 확립하는 시기였다.

강릉농악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공연 전문성을 위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상설 공연단을 조직하여 국내외 공연(중국, 일본, 멕시코, 베트남, 체코등)과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무형문화재 순회공연, 전통문화관광상품, 강릉농악 상설공연을 경포해변, 오죽헌, 선교장 등지에서 활발하게 공연하였으며 전수학교는 초등학교 8개교, 중. 고등학교 4개교 대학 농악대 3개교 그리고 산하 7개 마을농악대가 있다.

해방후 강릉농악 사진